Oct 302014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다. 어느덧 뉴질랜드는 holiday 시즌을 맞이하고 있었다. 11월 말이 되어가자 신규 등록되는 구인공고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휴가철이니 새로운 구인건은 내년으로 미루는 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잡아서 와이프 휴가 기간 중에 와이프 친구 부부와 함께 북섬의 북부 지방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서 북쪽으로 갈수록 더 따뜻해지는데, 안 그래도 햇살 강한 여름인데 더 북쪽으로 가서 그런지 덥기까지 했다. Paihia와 Kerikeri, 90 mile beach(실제론 67mile 정도?)와 타즈만해와 태평양이 만나는 cape reinga 등을 여행했다. 백패커에서는 주인장이 잡아온 커다란 스냅퍼(도미류) 일부를 받아서 회로 먹는(아 초고추장이 없었다 ㅠ.ㅠ) 행운도 누리고, 90 마일 비치에서는 모래사구에서 샌드 슬라이딩도 즐기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비록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무언가가 가득했지만.

휴가 시즌이 끝나갈 무렵 다시금 Job hunting에 박차를 가했다. 올라오는 모든 구인공고에 지원서를 보냈다. Position도 가리지 않고, 지원분야도 좀 광범위하게 잡아서 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전화 한통.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약속을 잡고 집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넷 호스팅 업체의 구인건인데 내 경력이 잘 맞을 거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와의 인터뷰 준비를 철저히 했다. 회사의 구인 공고, 지원자 요건, 사업 내용, 내 경력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지, 어떤 걸 공헌할 것인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 스타일이 어떻게 해당 회사와 조화될 지, 어떻게 업무를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해서 준비했다. 인터뷰 당일,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회사의 한국인 스태프였다. 젊어 보이는 한국인 직원이었다. 팀장(?), 해당 업무를 하는 다른 직원, 한국인 직원과 나, 이렇게 4명이서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해나갔다. 해본 적 없는 것, 해본 적 없지만 공부해 본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얘기했고, 해본 일,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내 의견을, 서투른 영어로 피력했다. 인터뷰 결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의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원과 인터뷰를 계속 해나갔다. 웹 분야에도 지원을 많이했었는데, 그 중 한 웹 전문 에이전시와의 인터뷰가 잡혀서 오클랜드 시티로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조금은 복잡한 건물이라서 길치인 나에게는 고난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해당 에이젼시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거의 1인 기업 분위기였다. 게다가 감기가 걸린 상태라서 그런지, 인터뷰도 대충 대충하더니 감기 때문에 더 하기 힘들다면서 다음에 날 잡아서 계속 하자고 중단을 요청했다.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아무리 약자 입장의 구직자라지만, 그 인터뷰를 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에이젼시인지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물론 다음 인터뷰 날짜는 내가 확정해주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 하자고 하고 나왔다.

기대했던 웹 호스팅 업체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메일 대신에, 그 에이젼시가 전화를 해왔다. 다른 후보자가 있었는데, 아주 조금의 차이로 그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근소한 차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최종 후보자 2명 중 한 명이 되었었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경력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는 걸, 내가 해낸 그 장시간의 인터뷰가 너무 꽝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지만, 실패로부터 배워나간다면 조금씩 기회를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지방에 위치한 기업과의 인터뷰가 잡혔다. 이번에는 전화 인터뷰 후 직접 회사로 오라고 했다. 물론 교통비라든지에 대한 지원은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혼자 지방가는 버스를 타고 황가레이로 갔다. 도착 후 걸어서 회사 근처로 도착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점심 시간 끝나고 바로 인터뷰라서 근처 스시집에 들려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들려보니 조그마한 테이크아웃 전문 스시집이였다. 딱 봐도 한국인 직원이었다. 그래도 스시를 사려고 줄 서 있는 현지인들 때문에 그냥 영어로 간단히 결제하고 식당 앞에 놓여져있던 조그마한 탁자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가글도 하고 시간에 맞춰 회사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오래된 회사인듯 했다. 북섬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독점 기업인듯 했다. 개발 팀장과 직원, 에이젼시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참석한 면접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Problem solving 테스트였다. 개발 관련한 상황 3가지를 주고 어떻게 구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구성도라던지, 계획을 해보라는 것이였다. 익숙한 상황들이라서 늘상 해왔던 대로 슥삭 결과를 적어나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도 수긍하는 표정들이었다. 개발 팀장이 직원에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그 직원이 괜찮아 보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다. 그 이후에는 긴 인터뷰가 이어졌다. 내 경력, 업무 방법, 개인적인 성격에 대해서 하나 하나 물어보고 답하고 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100불 짜리 기프트 카드를 받았고 부푼 기대감을 가슴을 묻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어 교환 만남을 하는 친구가 다니는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딩 테스트를 보라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열심히 치뤘고, 그 이후에 인터뷰가 잡혔다. 회사에 가보니 규모가 꽤 되는 튼실한 회사였다. 사무실안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웹 개발자들은 해밀턴 지사에 주로 있어서 화상 회의와 함께 개발자 3명이 동석해서 면접을 봤다. 면접 내내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고 그런대로 잘 치룬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떨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합격하지 못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친구에게 얘기하니, 인터뷰에 참석한 사람 중 4명은 내 영어 보다도 떨어진다면 말도 안된다며 화를 냄으로써 나를 위로해주었다.

Oct 302014
 

한나에게

141일째 2014년 10월 20일, 일하다가 엄마에게 별 일 없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한나가 얼굴을 큰 상처를 또 냈다고 했어. 집에 와서 보니 정말 이제까지 만든 상처중에 제일 크더라구. 부랴부랴 손톱관리법을 찾아보니, 아기들 손톱에도 손톱줄을 사용해도 된다고 하더라구. 안되는 줄 알고 안했는데, 4개월 넘었으니 해봐도 괜찮을듯 싶었어. 계속 손가락을 빠니까 손톱이 약해져서 더 날카롭게 되거든. 손톱줄 해보니 훨씬 부드러워졌어. 그리고 로션도 발라서 다시는 얼굴을 상처 안나게 잘 관리해줄 게.

142일째 2014년 10월 21일, 아빠가 좀 늦게 퇴근을 했어.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한나가 깨더라구. 별루 오래 안 자고 얕은 잠 자다 깬 듯 싶었어. 부랴부랴 저녁을 챙겨먹고 목욕을 하고 배불리 수유를 하고 엄청 졸려하는 한나를 안고 재우기에 돌입했지. 그전에는 그냥 내려놓고 나왔는데 요즘 잠투정이 부쩍 늘어서 다시 수면교육을 하기로 했어. 그래서 한참을 안고 있다가 내려놓고 pacifier를 물려주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재웠어. 워낙 졸린 상태라서 그런지 한참을 낑낑 대다가 잘 잠들었어.

143일째 2014년 10월 22일, 엄마가 저녁에 나가서 사 온 테이블 스탠드랑 커턴을 시도해봤는데, 스탠드는 전구를 가려서 실패했고, 커튼은 잘 설치했는데, 한나 재우고 나와서 설명서를 보니, 냄새가 빠지도록 좀 환기시킨 후 사용하라고 해서, 겨우 조용 조용히 커튼을 다시 떼어야 했어. 결국 둘 다 실패!

144일째 2014년 10월 23일, 환기해뒀던 커튼을 다시 달았어. 빨간색 계열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이뻤어.

145일째 2014년 10월 24일,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아빠가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한나 목욕도 못 시키고 서둘러서 모임에 갔어. 가는 동안 한나는 잠이 들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잠이 깼어. 다들 한나 보고 싶어 했거든. 그런 후에 좀 있다가 다시 졸려하기에 재우고 나왔는데, 환경이 낯설어인지 안 졸렸는데 재우려 한건지는 몰라도 울면서 깼어. 엄마가 분유 수유를 하고 한참 걸려서야 겨우 재울 수 있었어. 그러고 거의 2시간 넘게 잤을 거야. 밤 11시 넘어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거의 12시가 다 되어 있었어. 서둘러서 다시 수유하고 재웠어.

146일째 2014년 10월 25일, 아빠가 하루 종일 놀러간 날이야. 회사 동료들하고 모임이 있어서 아침 일찍 청소하고 1시 넘어서 나가서 밤 11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어.

147일째 2014년 10월 26일, 아침에 집 근처 교회를 갔어. 예배 시간에 많이 늦었지. 근데 신기하게도 예배하는 내내 한나가 짜증도 안 내고 집중해서 지켜보더라구. 마지막에 음악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땐 우워 하며 옹알이도 하구. 예배 후에는 유모차를 타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보타니 타운 쇼핑센터에 갔어. 한나용 육아용품도 사다 보니 한나는 어느새 유모차에서 곤히 잠들었지. 마지막에 미니 전기오븐을 사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2시가 넘어있었어. 집에 서둘러 돌아와서 수유를 하고 얼른 재웠지. 거의 5시간 가까이만에 수유한거라 230ml 다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겨우 150ml 먹었어. 요즘 느낀건데, 한나가 마구 마구 먹지 않고 조절해가면서 먹고 있는 거 같아.

아빠가

Oct 262014
 

몸이 좀 나아지면서, Job hunting을 계속했다. 주로 Recruiting agency가 올린 구인광고들에 지원하다가, 업체가 직접 올린 구인 광고에도 지원해보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면 인터뷰 2건을 따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해당 회사 사이트의 내용을 열심히 요약하고 내 경력/스킬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할 것도 준비했다.

드디어 2번째 대면 인터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종이로 된 시험지를 받았다. 편안하게 추스렸던 마음이 엉망이 되었고, 준비했던 내용들도 연기처럼 다 사라져 버렸으며, 시험 또한 엉망으로 치뤘다. 시험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안간힘을 썼지만, 제일 중요해 보였던 마지막 질문에, 전혀 준비한 것과 다르게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고 나오고 말았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역시나 이틀 후, “Unfortunately…unsuccessful…”이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3번째 대면 인터뷰를 위해 다시 회사 정보 수집 및 대답할 꺼리를 준비했다. 아예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외워서 그럭저럭 잘 해낸듯 싶었지만 역시나 결과는 실패.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갔다.

영어 사용 시간을 늘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어 교환 사이트들을 탐색했다. 그 중 괜찮아 보이는 mylanguageexchange.com에 등록 후 한국어 사용을 원하는 50대 아저씨에게 연락을 시도해봤다. 몇일간 무응답이었다. 그런데 몇 일 뒤 IT분야에 근무하는 왠 남성이 메일로 접촉을 해왔다. 카카오톡을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디를 등록 후 이것저것 탐색을 해보니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주말에 시티에서 처음으로 언어교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는  kiwi(뉴질랜드 사람들은 본인들을 kiwi라고 부름)는 아니였고 Latvia 출신의 40대 SW 개발자였다. 오클랜드 시티에 위치한 모 IT업체에 근무중이었고, 취미삼아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1시간은 한국어 가르쳐주고 나머지 1시간은 영어로 대화 좀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 구한다는 얘기에, CV 한번 봐준다고 해서 메일로 보냈더니 Skill matrix를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일목요연하게 프로젝트, 사용한 기술 및 업무를 테이블로 만들어서 CV에 넣었다. 그리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도 구인중이라며 자기 추천으로 회사에 넣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헤드헌팅업체말고 직접 구인하는 업체에 주로 지원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오죽하면 seek.co.nz에서 리크루팅 에이젼시가 올린 구인공고만 삭제해서 보여주는 브라우저 플러그인(userscript)을 만들었을까 싶다.

리크루팅 에이젼시와의 전화 인터뷰나 대면 인터뷰를 하다보면 늘 듣게 되는 Local experience. 나 같은 새내기 이민자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자원봉사 경험이라도 쌓아두자는 생각에 여기 저기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사이트가 volunteernow.org.nz다. 거길 통해서 volunteeringauckland.org.nz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온라인으로 회원가입하고 신청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재촉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 다음 날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직접 직접 사무실로 방문해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뭐든 쉬운 게 없나보다 싶었다. 약속한 날짜에 사무실로 방문하니 백발의 할머니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셨다. 그분 중 한 분과 상담을 해서 구세군쪽에서 진행하는 elder people에 대한 be-friending 파트에 지원했다. 일부러 IT업계와 상관없는 일에 지원했다. IT보다는 언어를 늘리는 게 순서일듯 해서였다. 신청 후 2주가 넘은 시점에 구세군측에서 전화가 왔다. 주소가 잘못 된 거 같아서 확인 전화를 해온 것이다. 주소를 정정해주고 나니 몇일 안에 겨우 신청서류를 보내줬다. 뭐 쉬운 게 어디 있으랴마는 뉴질랜드에서는 뭐든지 인내심과 시간을 요구하는 거 같다.

지역 가리지 않고 지원하다보니, 어쩌다 남섬에 위치한 조그마한 업체와 skype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아침 10시에 상의만 셔츠를 걸치고 땀 뻘뻘 흘려가며 인터뷰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인터뷰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참 어이없었을 것이다.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었으니까. 몇 일 후에는 크라이스트처치(남섬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는 어느 업체의 개발 이사가 오클랜드로 구직자를 만나러 올라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클랜드 시티 도서관 내의 커피숍에서 2시간 넘게 면접을 치뤘다. 엄청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같기에 사실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늘 그랬듯 실패였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Oct 212014
 

뉴질랜드 도착 직후, 뉴질랜드 스타일의 CV랑 커버레터를 만들고, 영어 공부하고, seek.co.nz하고 trademe.co.nz에서 지원해야 할 구인공고 점검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 교민이 많이 가는 모 사이트의 구인 게시판에 올라온 모 교민 업체의 구인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진 경력과 보유한 스킬이 구인 공고와 얼추 맞아 떨어져서 CV를 보냈는데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결과는 실패. 첫 실패로는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첫 직장 퇴사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대답을 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아마 그것보다는,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첫 실패가 기폭제가 되어 입사지원을 폭발적으로 진행했다. Senior/Intermediate/Junior에 개의치 않고 무한 apply 러쉬를 실시했다. 18군데 지원 이후에 운 좋게 걸려온 첫 전화 인터뷰. 정말 가슴이 콩닥 콩닥 떨렸다. 전화기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며, 첫 전화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깨달았다. 난 한번도 영어로 전화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름, 비자 종류, 원하는 연봉 수준, 정규직/계약직 등을 간단하게 묻는 질문들도 이해 못하고 버버벅 거리자, 황급하게 bye를 날리며 끊는 구인 에이젼시의 음성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이후의 4번의 전화 인터뷰들도 몽땅 작살났다.

좌절의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와이프 아침을 챙겨주고, 아침 운동 조금 하고, 영어 공부하다가 좀 졸고, 점심 먹고 구인공고 목록 정리해서 지원하고, 이런 흐름의 일상 생활 속에서 누적되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날아든 희소식. IELTS 6.5 점수도 없이 영주권을 신청했다가 영어 시험 본 후 점수 제출하라는 담당 이민관 덕분에 와이프는 폭풍 영어 공부를 했었고 시험 점수가 발표되던 날, 정말 기적처럼 6.5가 나왔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부담거리였다. 비자는 해결되었고 이제 취업만 하면 되는 거였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와이프 친구가 알려준 http://www.englishlanguage.org.nz/ 에서 진행하는 워크비자 이상 소유자 대상의 구직자 무료 영어 과정. 온라인으로 신청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역시 없었다. 직접 전화해서 미팅 약속 잡고 직접 사무실에서 만나서 돈 내고 등록했다. 가 보니 2/3가 한국 사람이었다. 이라크 출신 난민 이민자 4명, 중국 이민자 2명, 나머지 12명은 한국 출신이었다. 강의 내용이 구직자인 내 입장에서는 꽤나 유용했다. CV 쓰는 법, 전화 통화하는 법 등에 대해 실무적 관점에서 배울 수 있고 실습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의 성격, 자신의 장단점 등을 영어로 기술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다. 과정이 끝나기 전에는 해당 과정의 선생님에게 CV 교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교정받은 CV를 가지고 지원하면서 전화인터뷰 비율이 높아졌다. 18군데 지원시 5번의 전화 인터뷰를 받았다가 교정 이후에는 4군데 지원에 3번의 전화 인터뷰를 받았다. 확실히 native가 쓰는 글은 달랐다. 같은 표현도 다른 어휘를 가지고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이 가능한 것이었다.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험난한 테스트 과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해본 온라인 기술 테스트. IKM이라는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기술 시험을 치뤘다.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던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짜증이 좀 났고, 그래서인지 대충 풀었던 거 같다. 사실 약간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시험을 치룬 사람에게 결과도 안 보여주는 불친절한 기술 테스트였다. 아마 의뢰자에게만 결과가 보내지는 구조일듯 했다. 물론 결과 제출 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비슷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간단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운동 중에 줄 넘기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화분을 쭈그려 앉은 채로 “밀다가” 허리 근처에 찌릿 하는 느낌이 왔다. 그 이후 별 다른 느낌은 없었는데, 구직자 영어 강좌를 들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점점 해당 부위가 찌릿찌릿 하면 아파왔다. 강좌 내내 앉아있기도 불편했지만 꾹 참고 강의를 마치고, 다시 긴 거리를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너무 아팠다. 겨우 겨우 다시 버스를 타고, 겨우 겨우 한 걸음 내딛고 한번 쉬는 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퇴근한 와이프와 함께 근처 한의원(대부분 침술사인데 한의원이라는 상호를 사용함, 뉴질랜드내에서는 그런 제재가 없는 듯함, 한국 면허를 가진 한의사는 정말 찾기 힘듬)를 찾아가서 침 맞고 물리 치료도 받고, 집으로 와서 파스도 붙였다. 그래도 이틀이나 앓아 누워있었다. 참 별 일이 다 생기는 구나 싶었다.

근데 치료를 받기 전에 ACC(사고로 인한 상해에 대한 치료를 커버해주는 공적 의료 보험 같은 제도, 관광객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환상적인 제도임) 등록을 하고 침술원을 갔다면 무료였을 텐데 그걸 모르고 가서 2번 물리 치료 + 침 치료에 130불을 낸 게 너무 아까웠다. 아는 것이 힘이자 돈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침술원이 ACC 등록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ACC Provider로 등록된 곳은 ACC 등록을 바로 해줄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뉴질랜드에서는 GP(일반 가정의)를 보는 데도 돈을 내야 하는 곳이 많은데, White cross는 무료 ACC 등록을 해주는 곳이라는 것도 검색으로 찾아서 알아두게 되었다.

Oct 192014
 

한나에게

134일째 2014년 10월 13일, 엄마에게 온 문자를 보고 황급히 동영상을 다운받아서 봤어. 와우! 드디어 한나가 한번 뒤집었어. 정말 운좋게 엄마가 동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어. 이제 몇 일안으로 뒤집고 또 뒤집고를 할 수 있겠지? 집에 와서 한나랑 놀다가 재우려고 침대에 내려놓았는데 어제처럼 2번이나 그냥 울고 보챘어. 목욕하고 다시 수유한 다음에는 잘 잠들었구. 아무래도 아빠가 놀아주다가 침대에 내려놓으니까, 더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긴 해. 졸린데두 안 자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야. 내일은 아빠가 놀아주고 재울 때만 엄마가 해볼 예정이야. 두고보면 알게 되겠지.

135일째 2014년 10월 14일, 어제부터 몸에 몸살 기운이 있고, 재채기도 나오고 목도 컬컬하고 했는데 결국 감기에 걸렸어. 게다가 퇴근 전에 마쳐야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6시가 넘어야 겨우 퇴근을 했어. 집에 도착해서 한나 얼굴을 보니 기분이 막 좋아지더라구요. 아꿍 아꿍 하는 내 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면서 씨익 웃어주는 한나 덕분이야. 점점 목, 허리, 다리 힘이 좋아지고 있어. 어제는 배밀이 자세에서 뒤집은 거구, 몇일안에 누운 자세에서 배밀이 자세로 뒤집을 수 있을 거 같아. 바운서에 비스듬하게 누워있게 하면, 일어나려고 목과 다리에 힘을 바짝 주는 걸 보면 하루나 이틀이면 될 거 같아. 슬슬 한나가 길어 다닐 수 있을 때를 준비해야 할 거 같아. 펜스랑 서랍 잠금 장치 같은 안전 장치 말이야.

136일째 2014년 10월 15일,  주문한지 좀 된 물품들이 오늘 도착했어. 엄마가 한국서 구매한 한나 옷들이 대부분이었어. 6개월, 1살, 2살용 옷들이야. 어쩜 다 그렇게들 이쁜지. 나중에 한나가 입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어.

137일째 2014년 10월 16일, 점점 발을 드는 힘이 좋아지는 거 같아. 이러다가 바로 걷는 건 아니겠지?

138일째 2014년 10월 17일, 아빠가 퇴근하고 나서, 목욕하기엔 좀 일러서 그냥 재우려고 했는데, 무려 3번째에야 겨우 재울 수 있었어.

139일째 2014년 10월 18일, 오랜만에 한나랑 나들이를 나갔어. 실비아 파크 쇼핑몰에 가서 한나방에 둘 dimming 기능있는 등도 사고, 카시트도 알아보고, 빨래넣어둘 통도 사야 했거든. 그전에 집 근처 팔선에 가서 먼저 식사를 했어. 그 다음에 이동을 해서 실비아 파크 쇼핑몰에 도착했지. 일요일이고 비가 조금 오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한나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것저것 보고 하나보니 시간이 엄청 지나있었어. Pak’n Save가서 쇼핑하는 건 뒤로 미루고 부랴부랴 집으로 와서 한나를 재웠어. 저녁에 목욕을 시키고 여느 때처럼 8시 좀 전에 잠이 들었어. 3시간 여를 밖에서 다니느라 피곤했을 거야.

140일째 2014년 10월 19일, 와우 이럴수가! 한나가 무려 11시간 넘게 내리 잤어. 어제 밤에 7시 40분에 잠이 든 후, 오늘 아침 6시 50분에 깼으니까. 아마 그전에 깼을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수면 시간이야. 어제 3시간 넘게 밖에서 나다니느라 제대로 잠을 못자서 그랬나봐. 그런데 어쩌지? 오늘도 강행군이었어. 아침에 깨자마자 준비해서 포레스트힐 교회로 갔어. 가서 예배 끝나고는 엄마 아빠 밥 먹는 동안 쪽잠을 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집에 도착할 때쯤에 잠이 들었어. 그래서 차 안에서 한나 깨기를 기다리면서 집 앞에서 엄마 아빠가 같이 자기도 했어. 집에 돌아와서는 잠을 많이 안 잤어. 그러다가 분유를 먹였는데 무려 230ml를 먹었어. 11시간 넘게 자느라 부족했던 양을 보충하려는 듯 정말 엄청난 양을 먹었어. ㅎㅎㅎ 그 이후에도 조금 자고 깨고 그랬어. 아마 수면 리듬이 많이 깨져서일꺼야. 시간이 애매해서 6시 30분쯤 목욕을 하고 한나를 재웠는데, 울며 깨고, 다시 울며 깨고 해서 겨우 7시 10분 정도 되어서야 재울 수 있었어. 엄마 아빠랑 더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긴 해. 어찌나 귀여운지 말이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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