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42014
 

한나에게

169일째 2014년 11월 17일, 한나가 낮 중에 엄청 적게 먹었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하루 먹는 양을 계산해보니 먹을만큼은 먹고 있는 거 같아. 그래도 한번에 200ml씩 먹었던 게 생각이 나서 조금 아쉽기도 하구. 사실 많이 먹으면 밤중 수유를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있는 건  사실이야.

170일째 2014년 11월 18일, 어제 저녁 6시가 잠들기 전 마지막 수유라서 10시에 깨서 다시 수유하고 재웠는데 12시에 한나가 깼어. 다독여서 다시 재우니 금방 잠이 들었어. 그 다음엔 역시 수유 후 4시간인 2시, 6시에 다시 깼지. 엄마가 6개월 되기까지는 그냥 밤중 수유를 하자고 했는데, 사실 조금 힘들다. 엄마 손목이 안 좋아서 아빠도 밤중에 한나 깰 때마다 일어나서 돕고 있어. 체력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어. 

171일째 2014년 11월 19일, 밤중 수유 때문에 계속 피곤한 하루였어. 6개월 될 때까지는 그냥 이대로 하자는 엄마 의견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2번, 3번 깨는 건 힘든 거 같아. 엄마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아빠 출근한다고, 혼자서 밤중 수유를 몇 달 동안이나 혼자 해왔었다니…늦었지만 아빠가 열심히 일손을 거들어야겠어.

172일째 2014년 11월 20일, 감자 이유식을 엄마가 한나에게 줬더니 너무 맛있어 했데. 분유 먹는 양은 낮에는 확 줄고, 밤에는 확 늘었는데, 다행히 이유식은 꾸준히 잘 먹는 거 같아.

173일째 2014년 11월 21일, 오전에 BCG 예방 접종을 하러 엄마랑 같이 갔어. 주사를 맞는데, 거의 울지 않아서 놀라웠어. 엄마는 침 맞으러 갔다 오고 아빠는 한나랑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어. 근데 한나 몸에 발진 같은 게 몸 앞이랑 등쪽이랑 좀 많이 나 있어서 걱정이 되었어. 별일 아니길…

174일째 2014년 11월 22일, 아침에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점심 때쯤 아빠는 Social life를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어. 오래전에 약속한 거라서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이번에 저녁 9시전에 집으로 돌아와서 한나를 볼 수 있었어.

176일째 2014년 11월 23일, 대장정이었어. Forrest Hill 교회를 갔어. 한나가 깨기를 기다렸다가 8시 40분쯤 집을 나섰어. 교회에 도착해서는 괜찮았어. 예배 중에는 울지도 않고 잘 있었는데, 예배가 끝나갈 때쯤 한나가 졸려하고 있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한나를 보겠다고 오는 바람에, 한나가 울기 시작했어. 낯선 사람이라는 걸 알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고 그랬을 꺼야. 그래서 예배 후에 후다닥 챙겨서 Hide네 집으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었어. 새벽 5시 10분에 수유한 이후에 아침에도 거의 안 먹고, 교회 예배 끝나고서도 거의 안 먹다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150ml 정도 먹었어. 그리고 Hide랑 Yuri 볼 때는 안 울었어. 아마 사람들이 너무 많고 시끄럽고 졸려서 그랬나봐.

아빠가

Nov 112014
 

한나에게

162일째 2014년 11월 10일, 엄마 손목이 많이 안 좋아져서 아빠가 sick leave를 썼어.  잘한다는 침술원을 급히 예약해서 갔지. 그동안은 아빠가 한나랑 놀아주고,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고 했어. 혼자 하다 보니, 육아라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다시 절감했어. 한나는 나중에라도 엄마에게 키우느라 힘들었을 꺼라고, 고맙다고 꼭 얘기해줘. 꼬옥 껴안으면서 말이야.

163일째 2014년 11월 11일, 어제 침술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일까? 엄마가 자는 동안 아프긴 해도 저리진 않았다고 해.  엄마 손목이 많이 안 좋아졌거든. 근데 오늘은 처음으로 한나가 발을 빨았어. 엄마가 날카로워진 한나 손톱을 손질하고 있었어. 한나가 앉은 상태에서 앞쪽으로 상체를 구부린 채로 손을 빠는 듯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발을 빨았더라구요. 그리고 저녁에 한나를 재울 때, 처음으로 수면 의식 다운 수면 의식을 해봤어. 그동안은 Hide 할아버지가 사 준 모빌의 자장가 음악을 수면 의식으로 했는데, 눕히자 마자 음악 틀고 재우다 보니 한나가 많이 보채곤 했었어. 그래서 한나가 잠자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려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았어. 자장가 음악을 틀어놓고 아빠가 동화책을 2번 읽어주고, 5분 정도 꼭 안아준 다음 Cot에 눕혀서 재워보려고 해. 잘되겠지?

164일째 2014년 11월 12일, 엄마가 아침에 침술원에 가야 해서 아빠가 한나를 돌보기 위해 Sick leave를 썼어. 밤중 수유를 중단해볼까 하고 요즘 노력 중이야. 그런데 새벽에도 4시간 마다 깨는 게 아무래도 낮 동안에 4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서 인듯 싶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165일째 2014년 11월 13일, 아빠가 퇴근을 좀 늦게 했어. 엄마가 좀 뾰루퉁해 있더라구.  일찍 퇴근하도록 노력해야 겠어.

166일째 2014년 11월 14일, 새벽 수유 중단을 시도해봤지만 한나가 많이 힘들어해서 그냥 먹여야 했어.

167일째 2014년 11월 15일, 아침에 엄마가 침술원에 치료받으러 가야해서 청소도 다 미뤘어. 수요일에 한번 진공청소기로 대강 해둬서 그나마 다행이야. 엄마 없는 동안 아빠가 한나랑 놀고 재우고 먹이고 그랬어.  산책도 가고 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흐리고 비 오고 바람불어서 그러지는 못했어.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새벽부터 해서 저녁까지 무려 4번이나 오줌이 세서 한나 옷을 갈아입혀야 했어. 요즘따라 왜 이리도 많이 새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밤중 수유를 중단하기 위해 수유 간격을 4.5시간으로 늘려서 하는 중이야. 좋은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168일째 2014년 11월 16일, St. Columba 교회에 갔다가 한나가 많이 칭얼거려서 예배 끝나기 전에 일찍 나와서 Botany shopping centre에 갔어. 엄마는 한나랑 Warehouse에서 기다렸고 아빠가 시간 맞춰서 오픈홈을 다녀왔어. Warehouse에 있는 동안 한나가 잠들었다가 아빠가 합류하고 나서는 깼는데, 조금 더 칭얼거려서 Parenting room엘 갔어. 수유를 하려고 했는데, 한나가 먹질 않아서 그냥 다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어.

아빠가

Nov 092014
 

한나에게

155일째 2014년 11월 3일, 한나가 밤에 자는 시간이 8시간 정도 되어버렸어. 밤중 수유를 끊어보려고 새벽 3~4시쯤에 일어날 때 수유를 한 두번 건너 뛰어봤거든. 그랬더니 아침에 먹는 양이 많아지더라구. 아침 수유 이후에는 수유 간격을 4시간으로 하고 있었어. 그랬더니 한번에 먹는 양이 늘었고, 밤에 자는 시간도 늘었어. 잠들때까지 엄마나 아빠가 지켜주니까, 재우려고 침대에 내려놓아도 울지 않고, 금새 잠들기도 하고 말이야. 엄마에게는 너무 오랜만에 갖는 풀 타임 수면이라서 오히려 걱정되서 자꾸 깨기도 했나봐. 이제부턴 한나가 잘 잘 거 같아. 고마워.

156일째 2014년 11월 4일, 엄마에게 들어보니 한나가 바운서에서 고꾸라졌다고 했어. 허리 힘이 많이 강해졌나봐. 이제 한나 혼자 둘 때는 꼭 벨트를 해야겠어. 아, 그리고 드디어 한나의 뉴질랜드 여권이 도착했어. 엄마 아빠의 영구영주권 비자도 같이 나왔구. 한나의 한국 여권은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 만들어줄께.

157일째 2014년 11월 5일, 엄마가 한나랑 같이 Plunket에 갔다 왔는데, 한나 몸무게가 6.31KG라고 했어. 한쪽 가슴만 먹는 동안에는 몸무게가 오히려 줄어드는 거 같아서, 한나가 힘들어하는 걸 감수하고 젖병으로 갈아탔는데, 그 과정이 이제 한나의 몸무게로 잘 반영된 거 같아서 기뻐. 어쩐지 한나를 두 손으로 들어올릴 때마다 무거워진거 같았거든. 한번에 150ml ~200ml 정도를 4시간 간격으로 먹어주는 한나가 너무 대견해. 태어날 때는 성장 곡선에서 하위 5%였다가 25%로 점프 후 다시 하위 3%로 추락 후 다시 25% 선에 올라왔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잘 커주렴.

158일째 2014년 11월 6일,  요즘은 밤중 수유를 중단하려고 노력중이야. 근데 한나가 8시에 잠들었다가 11시~12시 사이에 깨면 엄마 아빠는 고민이 좀 돼. 먹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냥 재우려고 했더니 3번이나 울면서 힘들어해서 결국 먹이고서야 재웠어. 물론 그런 후에는 잘 자는 편인데, 오늘은 3시간후인 3시, 그리고 5시에 깨서 엄마 아빠가 조금 힘들었어. 어떨 때는 아침 5시나 6시까지 잘 자기도 하는데 그 때 그 때 다른 거 같아. 이가 나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하여튼 계속 노력하면서 지켜봐야 겠어. 밤중 수유를 끊어야, 성장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오는 새벽 1시경에 깊은 잠에 잘 수 있거든.

159일째 2014년 11월 7일, 밤 11시 넘어서 한번 깨고, 새벽에 3시에 한 번 더 깨고, 새벽 5시에 또 깨서 엄마 아빠가 녹초가 되었어. 언제쯤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까?

160일째 2014년 11월 8일, 밤 8시쯤에 한나가 깊게 잠이 들었는데, 9시쯤 되니 집 앞에서 요란한 폭죽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집 멀리에서 들리던 거랑은 확연히 달랐어.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집 앞 길가 한 쪽에 아이들 5~6명이 휴대용 의자를 놓고 앉아 있고 어른도 몇 명 보이고, 폭죽은 쉴 새 없이 쿵, 펑 하면 터지고 있었지. 원래 자기 집 안에서만 쏴야 하는데, 끝이 막힌 도로라서 그런지 길 가에서 폭죽을 쏴 대고 있었어. 다행히 10시가 될 때쯤 그 이웃들의 폭죽 놀이는 끝났고, 한나도 깨지 않았어. 뉴질랜드 와서 딱 싫은 거 2개가 생겼는데, 그 중 한개가 제한없는 폭죽 놀이야. 그 위험하고 큰 소음을 동반하는 걸 아무 때나 쏠 수 있다니 아빠는 이해가 가질 않아.

161일째 2014년 11월 9일, 아침에 시간 맞춰서 한나랑 같이 교회를 갔어. 한국에서 구입한 유모차용 쿠션이 있어서 한나가 더 편안해 보였어. 역시나 한나는 예배 중엔 거의 울지 않았고, 중간에 졸려서 잠이 들었어. 예배 끝나고는 근처 회전 스시집에 갔어. 근데 사람이 많아서 조금 기다려야 했지. 빙글빙글 도는 회전스시 컨베이어를 한나는 신기해했어. 차로 돌아가기 길에 한나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서, 엄마는 잠든 한나를 유모차에 태운 채 30여분을 걸어서 집으로 왔어. 아빠가 중간에 마중을 나가서 같이 돌아왔지. 저녁이 되어 7시쯤 한나를 재우려는데 도통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것 처럼 보였어. 아니, 잠들려고 하면 일부러 깨어나려는 듯 말이야. 엄마 아빠랑 더 놀고 싶어서인지, 잠들 때를 놓쳐서 짜증이 난 건지. 결국 1시간 30분만에야 겨우 잠이 들었어. 요즘 여기 저기서 firework를 쏴대는 데, 부디 깨지 않고 잘 자야 할텐데 걱정이 된다.

아빠가

Nov 042014
 

한 리크루팅 에이젼시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 경력은 대부분 웹개발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Java를 가지고 몇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에이젼시 직원은 3.5년 정도되는 기간의 내 Java 경력을 가지고 어느 회사와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었다. 너무 자신이 없어서 미리 에이젼시에게 언질을 해두었지만, 내 예상대로 인터뷰는 엉망진창이었다. J2EE나 Spring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여서 많은 질문에 해본적 없고 모른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담했던 인터뷰 내용을 얘기하며 약간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해본 적도 없는 분야의 인터뷰를 왜 내가 나가야 했을까? 에이젼시 말만 믿고 선뜻 따랐던 내 미련함을 탓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황가레이 구인을 진행하던 에이젼시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심 기대했었던 터라 더욱 긴장이 되었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최종 후보자 2명에 대해 회사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끓어올랐던 흥분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최종 결정을 위해 한번 더 테스트를 제안한다는 것이었다. 승낙하지 않으면 다른 후보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코딩 테스트였는데, 코딩 중간 중간과 결과 중간 중간을 빈칸으로 만들어서 채우는 문제였다. 인터넷 서비스 뿐만 아니라 VoIP 기반의 전화 서비스도 하는 터라, 무슨 전화 번호 지역 분류 같은 코드였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24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문제를 받자 마자 대충 결론 추론 및 역산에 의한 검증을 하면서 뚝딱 뚝딱 채워서 결과를 보냈다.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걸 결정하려고 또 테스트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조금 그랬다. 한 달 가까이 기다린 결과가 무승부여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지친 마음도 달랠 겸해서 나선 코로만델 여행 중에 들른 한 여행지에서 느닷없이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신생 한인 호스팅 업체의 이사(?)라는 사람과 잠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뜬금없이 영어 테스트를 전화로 한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과 그다지 조용하지 않은 야외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사전 협의없는, 전화에 의한 영어 테스트를 받고 나니 짜증이 텍사소 물떼처럼 몰려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이사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해당 업체 대표와 인터뷰를 하자는 거다. 목구녕이 포도청인지라 언짢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느 커피숍에 시간 맞춰 나갔다.

해당 업체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개발하던 사람이 그만두면서 그를 대체할 다른 개발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업체의 대표는 모 업체를 이미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이사라던 사람은 그 과정을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이것 저것 질문과 대답이 오가다가 연봉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을 묻더니, 그 정도를 NZ 달러로 줄 수 있다는 거다. 즉 한국에서 1000만원 받았다면, 뉴질랜드 달러로 1만불 주겠다는 거였다. 곤란하다고 했더니 최저 희망 연봉을 얘기해보라고 했다. 막상 얘기했더니 대표라는 사람이 얼굴 표정이 바뀌면서 갑자기 영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자라서 일을 혼자서 처리못할테고, 그로 인해 통역을 고용해야 하는데 누가 그 돈(내가 얘기한 최저 희망 연봉)을 주겠냐는 거다. 원하는 그 연봉 받기는 거의 불가능이고 노느니 자기네 회사가 주는 월급이라도 벌면 수당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생활이 될테고, 그러면서 현지 경력도 쌓는 게 좋지 않겠냐는 충고섞인 제안이었다. 이쯤되면 판이 깨지고도 벌써 깨졌다 싶어서, 통역을 고용해야 할 정도의 영어실력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셨고, 그걸 더 보강한 후에 구직활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완곡한 거부의사 표현을 함으로써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굶어죽더라도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민자들에게서 피를 더 뽑으려고만 하는, 코딱지만한 한인 업체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도 그 업체는 교민들이 많이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한동안 구인광고를 계속 올려댔다. 많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경력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제시할 연봉은 고작 생활비 밖엔 안되는 수준이면서 말이다. 게다가 인터뷰 도중에 연봉 얘기, 그것도 구체적인 금액을 가지고 연봉 얘기를 해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씁쓸한 경험 뒤에 걸려온 에이젼시의 전화 한 통. 자바 개발자 인터뷰를 추진했던 그 에이젼시였다. 지난번엔 미안했다면서 이번에는 “Easygoing”라고 했다. 다시 한번 겁(?)을 줬는데도 자신있어하길래 인터뷰를 약속해주었고 얼마 뒤에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통보받았다. 인터뷰가 하루 종일이라고 했다. 살 던 곳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회사였다. 버스를 1번 갈아타고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아침 일찍 시간 맞춰 가서 미리 가글도 하고 수분 보충도 해뒀다. 9시가 되자 누군가 와서 나를 데리고 회의실 같은 곳으로 갔다. 회사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DB 설계 테스트가 이어졌고 끝난 이후에는 그 회사 직원 2명과 같이 회사 밖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황가레이 업체의 구인을 진행하던 그 에이젼시였다. 드디어 회사가 결정을 내렸고, 최종 후보자는 나라고 했다. 나는 결과를 30분 이내에 제출했고 정답률 95%(한 문제 검산을 잘못 한듯 했다)였고, 다른 후보자는 정확히 24시간만에 제출해서 100% 정답이었다고 했다. 왜 나를 선택했느냐고 되묻자, 30분만에 답안을 모두 제출했으며, 실수라고 보여지는 5%의 오답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하고 있던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이젼시에게,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아내와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까지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타당해보이는 이유때문이었는지 에이젼시는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엔 개발 관련 인터뷰와 일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오랜 인터뷰 동안 땀이 정말 많이 났다. 마지막은 Paper coding 테스트였다. 해당 테스트를 진행하던 직원에게 답안지를 내며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사실 다른 회사로부터 잡오퍼를 방금 받았는데, 만일 이 회사가 나를 채용한다면 나는 이 회사에 꼭 다니고 싶다. 그러니 가부 결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고 약간의 “호언장담” 같은 부탁이었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몰아쳤다. 한참 더운 여름의 낮 날씨였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도중에 만난 그 잠깐의 소나기를 맞고 옷이 흠뻑 젖었다. 불길했다. 안될꺼야, 회사를 협박하는 구직자라니, 내가 생각해도 건방져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한 후 흥분한 마음을 달래며 영어 공부도 하고 졸기도 하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날 인터뷰를 봤던 회사의 개발 매니져였다. 연봉을 포함한 모든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2 시간 정도 후에는 다시 전화가 와서 스캔한 고용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냈고, 종이로된 원본 계약서는 Courier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담담히 대답하며 전화를 끊고는 소리없는 환호를 질러댔다. 황가레이 업체쪽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른 회사로 가기로 했다고 얘기를 해야 했다. 아마 최종 후보자 중 다른 이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을 거 같다.

그 날 저녁 와이프는 늘 그랬던 것처럼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이랬던 거 같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뭘 먼저 듣고 싶냐고. 와이프는 늘상 좋은 걸 나중을 위해 아껴두니까, 당연히 나쁜 소식을 먼저 물었다. 와이프가 가고 싶어하던 황가레이 지역 업체에게서 잡오퍼를 받았는데 안 가기로 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럼 좋은 소식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오클랜드의 다른 업체를 선택했다고 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Job hunting은 그렇게 끝났다.

와이프가 영주권을 따기 까지, 내가 직장을 잡기 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느끼는 단 하나의 생각, 그것은 “기회는 여기 저기 널려 있지만 준비된 사람만 그것이 기회라는 걸 알아채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점이다.

와이프는  뉴질랜드 정규 간호사가 되기 위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왔지만, 필요한 영어 점수를 채우기에는 실패했다. 포기하기 직전에 휴가를 몰아써서 뉴질랜드 북섬 남섬을 같이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내가 한번만 더 해보자고 설득해서 한 텀을 더 학원에 등록했다. 그 때까지 해왔던 게 아쉽지 않도록 2년을 채우자고 설득했었다. 그 마지막 텀에, 그전에 와이프가 자원봉사를 했던 disabled adult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뽑힌 건 다른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한참 후에 다시 걸려온 그 시설의 전화. 이번에는 진짜였고, 그렇게 워크비자를 땄고, 나를 뉴질랜드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영주권을 위해서는 영어점수가 필요했고 딱 1번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피말리는 공부속에 결국 성공했다. 10년 넘는 간호사 경력, 그 바쁜 생활속에서 따두었던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더불어 자원봉사 경험, 간호사 등록을 위해 공부했던 영어실력이 어울어졌기엔 잡을 수 있던 기회라고 생각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 많은 좌절과 실패,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긴 6시간 넘는 테스트와 인터뷰들을 자신감있게 해내지 못했을 거 같다. 첫 전화 인터뷰에서 느꼈던 무서움, 첫 Paper coding에서 느꼈던 무너진 자존감, 첫 대면 인터뷰에서 느낀 부족한 영어 능력 등이 다시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그 기회를 가져다 준 거 같다. 물론 운 99%, 내 실력 1%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99%의 운도, 내 1%의 실력이 없었다면 아마 무의미했을 것 같다. 다시 되돌아봐도, 만약, 황가레이건이나 지금 다니는 직장의 인터뷰가 첫번째, 혹은 두번째 인터뷰였다면 나는 거기서 모두 실패했으리라 확신한다. 백번이 넘는 입사 지원, 수 십번의 전화 인터뷰, 십여번의 리크루팅 에이젼시 인터뷰, 열 번 가까운 온라인/Paper Coding 등의 테스트, 열 몇번의 기업과의 대면 인터뷰를 거치면서 변화된, 준비된 상태였기에,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확실해 보이는 것만, 될 거 같은 것만 했다면, 덜 좌절하고 덜 실패했을 수 있을 수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동안 사용했었던 조그마한 수첩과 블로그에 짬짬이 적어두었던 기록들을 보며 기억을 뒤새기며 이 취업기를 써내려왔다. 장황하게 내가 거쳐온 과정을 늘어놨으니 실제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 또한 내놔야 할 거 같은 부채감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내용들을 적어봐야 겠다. CV와 Cover letter, 전화 인터뷰 대처 방법, 내가 치뤘던 각종 테스트들, 뉴질랜드 이민을 위해 IT종사자가 선택 가능한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20개월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내가 경험한 선에서 기술해보려고 한다.

Nov 032014
 

한나에게

148일째 2014년 10월 27일, Labour day라 휴일이었어. 한나의 NZ 여권을 신청하려고 아침에 옆집 Bill한테 갔어. 유효한 NZ여권이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해야 하는데, Bill 할아버지의 여권은 만료되어 있었어. 그래서 다른 이웃집으로 아빠를 데려다주셨는데 다행히 2번째 집(20번지)에 William이 여권이 있더라구. 엄마 아빠가 이사오고 나서 이웃들에게 편지를 모두 보냈는데 답장을 보내준 집이였지. 다행히 여권이 있어서 증인용 폼을 채워주셨어. 근데 사진 뒤에 증인이 서명을 해야하는 걸 아빠가 몰라던 거야. 그래서 오후에 여권 사진을 인화한 다음에 다시 사인을 받았어. 한국 여권은 한국 들어가서 만드는 게 나을 거 같아. 지금 만들면 한나에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 않아서 임시여권밖엔 못 만들거든.

149일째 2014년 10월 28일, 엄마가 한나 데리고 우체국 가서 여권 신청 서류하고 엄마 아빠의 영주권 트랜스퍼 신청서류를 보냈어. 한나는 영주권자인 엄마 아빠 사이에 태어나서 태어나자 마자 NZ 시민권을 취득해서 영주권이 필요없어. 물론 한국 국적도 신청해서 취득한 상태야.

150일째 2014년 10월 29일, 엄마의 손목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아빠가 Sick leave를 몇 일 써야 할 거 같아. 오전 동안 열심히 일하고 2시쯤에 집에 오니 한나가 조금 놀란(?) 눈치였어. 최대한 엄마가 손목을 쓰지 않도록 아빠가 노력할 꺼야.

151일째 2014년 10월 30일, 날씨가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어. 강풍이 몰아쳐서 산책 나가기엔 좀 무리였거든.

152일째 2014년 10월 31일, 걱정했던 잠투정이 다시 잦아든 거 같아 참 다행이야.

153일째 2014년 11월 1일, 다시 시작된 강행군. 오전에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점심도 후딱 해결하고 한나가 12시쯤에 깨자 마자 한나를 태우고 보타니 쇼핑센터로 갔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쇼핑도 좀 하고, 커피도 마셨어. 그 전에 스타벅스에 갔을 때에는 한나가 캡슐안에서 자기만 했는데, 이제는 유모차에 누워서 엄마 아빠랑 장난도 치고 그랬어. 시간 참 빠르다. 중간에는 Parent room 가서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고 했어. 시간을 체크해보니 어느덧 4시. 후딱 집으로 와서 재우려고 했는데, 중간에 30분 정도 자서 그런지 도통 자려고 하지를 않는 거야. 결국 1시간이 넘게 놀다가 아기띠를 써서 겨우 재울 수 있었어. 근데 아기띠로 한나를 재울 때마다 아빠는 가슴이 두근거려. 아빠 품에 얼굴을 파묻고 쌔근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엽거든. 조그마한 사람이 잠을 자는 순간 마저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것, 그것을 받아내는 것. 그것이 부모되는 일이 아닐까 싶어.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고 10년 후 한나를 만난 것, 아빠의 선택 중 제일 잘한 선택 중 하나일꺼야.

154일째 2014년 11월 2일, 한나를 재우려고 하다 보니 잠투정이 장난 아니였어. 최근 들어서 한나를 눕히려고만 하면, 울고 보챘거든.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가 한나를 눕혀 놓고 바로 나가버린다는 것에 한나가 서러워 하는 거 같아. 최근 2달 정도 한나를 내려놓고만 나와도 혼자서 잠이 잘 들었거든. 아기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때면, 다시 수면 패턴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글이 생각났어. 그래서 처음하는 것처럼 다시 해봤어. 한나를 내려놓고 엄마가 옆에서 한나 잠들때까지 계속 머리도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고 말이야. 엄마 말에 의하며 잠든 이후에도 4번이나 눈을 동그랗게 떠서는 엄마가 있는지 확인했다고 했어. 그동안 계속 사라져버리는 엄마 아빠 때문에 불안했을 한나에게 미안했어. 엄마는 한나가 잠들고서도, 엄마 손가락을 잡은 손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한 시간이 넘게 한나 옆에서 서 있었어. 앞으로는 한나가 잠들기전까진 꼭 엄마 아니면 아빠가 곁에 있을께.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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