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42014
 

한 리크루팅 에이젼시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 경력은 대부분 웹개발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Java를 가지고 몇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에이젼시 직원은 3.5년 정도되는 기간의 내 Java 경력을 가지고 어느 회사와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었다. 너무 자신이 없어서 미리 에이젼시에게 언질을 해두었지만, 내 예상대로 인터뷰는 엉망진창이었다. J2EE나 Spring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여서 많은 질문에 해본적 없고 모른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담했던 인터뷰 내용을 얘기하며 약간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해본 적도 없는 분야의 인터뷰를 왜 내가 나가야 했을까? 에이젼시 말만 믿고 선뜻 따랐던 내 미련함을 탓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황가레이 구인을 진행하던 에이젼시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심 기대했었던 터라 더욱 긴장이 되었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최종 후보자 2명에 대해 회사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끓어올랐던 흥분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최종 결정을 위해 한번 더 테스트를 제안한다는 것이었다. 승낙하지 않으면 다른 후보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코딩 테스트였는데, 코딩 중간 중간과 결과 중간 중간을 빈칸으로 만들어서 채우는 문제였다. 인터넷 서비스 뿐만 아니라 VoIP 기반의 전화 서비스도 하는 터라, 무슨 전화 번호 지역 분류 같은 코드였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24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문제를 받자 마자 대충 결론 추론 및 역산에 의한 검증을 하면서 뚝딱 뚝딱 채워서 결과를 보냈다.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걸 결정하려고 또 테스트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조금 그랬다. 한 달 가까이 기다린 결과가 무승부여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지친 마음도 달랠 겸해서 나선 코로만델 여행 중에 들른 한 여행지에서 느닷없이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신생 한인 호스팅 업체의 이사(?)라는 사람과 잠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뜬금없이 영어 테스트를 전화로 한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과 그다지 조용하지 않은 야외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사전 협의없는, 전화에 의한 영어 테스트를 받고 나니 짜증이 텍사소 물떼처럼 몰려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이사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해당 업체 대표와 인터뷰를 하자는 거다. 목구녕이 포도청인지라 언짢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느 커피숍에 시간 맞춰 나갔다.

해당 업체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개발하던 사람이 그만두면서 그를 대체할 다른 개발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업체의 대표는 모 업체를 이미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이사라던 사람은 그 과정을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이것 저것 질문과 대답이 오가다가 연봉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을 묻더니, 그 정도를 NZ 달러로 줄 수 있다는 거다. 즉 한국에서 1000만원 받았다면, 뉴질랜드 달러로 1만불 주겠다는 거였다. 곤란하다고 했더니 최저 희망 연봉을 얘기해보라고 했다. 막상 얘기했더니 대표라는 사람이 얼굴 표정이 바뀌면서 갑자기 영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자라서 일을 혼자서 처리못할테고, 그로 인해 통역을 고용해야 하는데 누가 그 돈(내가 얘기한 최저 희망 연봉)을 주겠냐는 거다. 원하는 그 연봉 받기는 거의 불가능이고 노느니 자기네 회사가 주는 월급이라도 벌면 수당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생활이 될테고, 그러면서 현지 경력도 쌓는 게 좋지 않겠냐는 충고섞인 제안이었다. 이쯤되면 판이 깨지고도 벌써 깨졌다 싶어서, 통역을 고용해야 할 정도의 영어실력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셨고, 그걸 더 보강한 후에 구직활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완곡한 거부의사 표현을 함으로써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굶어죽더라도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민자들에게서 피를 더 뽑으려고만 하는, 코딱지만한 한인 업체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도 그 업체는 교민들이 많이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한동안 구인광고를 계속 올려댔다. 많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경력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제시할 연봉은 고작 생활비 밖엔 안되는 수준이면서 말이다. 게다가 인터뷰 도중에 연봉 얘기, 그것도 구체적인 금액을 가지고 연봉 얘기를 해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씁쓸한 경험 뒤에 걸려온 에이젼시의 전화 한 통. 자바 개발자 인터뷰를 추진했던 그 에이젼시였다. 지난번엔 미안했다면서 이번에는 “Easygoing”라고 했다. 다시 한번 겁(?)을 줬는데도 자신있어하길래 인터뷰를 약속해주었고 얼마 뒤에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통보받았다. 인터뷰가 하루 종일이라고 했다. 살 던 곳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회사였다. 버스를 1번 갈아타고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아침 일찍 시간 맞춰 가서 미리 가글도 하고 수분 보충도 해뒀다. 9시가 되자 누군가 와서 나를 데리고 회의실 같은 곳으로 갔다. 회사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DB 설계 테스트가 이어졌고 끝난 이후에는 그 회사 직원 2명과 같이 회사 밖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황가레이 업체의 구인을 진행하던 그 에이젼시였다. 드디어 회사가 결정을 내렸고, 최종 후보자는 나라고 했다. 나는 결과를 30분 이내에 제출했고 정답률 95%(한 문제 검산을 잘못 한듯 했다)였고, 다른 후보자는 정확히 24시간만에 제출해서 100% 정답이었다고 했다. 왜 나를 선택했느냐고 되묻자, 30분만에 답안을 모두 제출했으며, 실수라고 보여지는 5%의 오답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하고 있던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이젼시에게,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아내와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까지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타당해보이는 이유때문이었는지 에이젼시는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엔 개발 관련 인터뷰와 일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오랜 인터뷰 동안 땀이 정말 많이 났다. 마지막은 Paper coding 테스트였다. 해당 테스트를 진행하던 직원에게 답안지를 내며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사실 다른 회사로부터 잡오퍼를 방금 받았는데, 만일 이 회사가 나를 채용한다면 나는 이 회사에 꼭 다니고 싶다. 그러니 가부 결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고 약간의 “호언장담” 같은 부탁이었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몰아쳤다. 한참 더운 여름의 낮 날씨였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도중에 만난 그 잠깐의 소나기를 맞고 옷이 흠뻑 젖었다. 불길했다. 안될꺼야, 회사를 협박하는 구직자라니, 내가 생각해도 건방져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한 후 흥분한 마음을 달래며 영어 공부도 하고 졸기도 하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날 인터뷰를 봤던 회사의 개발 매니져였다. 연봉을 포함한 모든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2 시간 정도 후에는 다시 전화가 와서 스캔한 고용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냈고, 종이로된 원본 계약서는 Courier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담담히 대답하며 전화를 끊고는 소리없는 환호를 질러댔다. 황가레이 업체쪽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른 회사로 가기로 했다고 얘기를 해야 했다. 아마 최종 후보자 중 다른 이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을 거 같다.

그 날 저녁 와이프는 늘 그랬던 것처럼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이랬던 거 같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뭘 먼저 듣고 싶냐고. 와이프는 늘상 좋은 걸 나중을 위해 아껴두니까, 당연히 나쁜 소식을 먼저 물었다. 와이프가 가고 싶어하던 황가레이 지역 업체에게서 잡오퍼를 받았는데 안 가기로 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럼 좋은 소식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오클랜드의 다른 업체를 선택했다고 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Job hunting은 그렇게 끝났다.

와이프가 영주권을 따기 까지, 내가 직장을 잡기 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느끼는 단 하나의 생각, 그것은 “기회는 여기 저기 널려 있지만 준비된 사람만 그것이 기회라는 걸 알아채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점이다.

와이프는  뉴질랜드 정규 간호사가 되기 위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왔지만, 필요한 영어 점수를 채우기에는 실패했다. 포기하기 직전에 휴가를 몰아써서 뉴질랜드 북섬 남섬을 같이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내가 한번만 더 해보자고 설득해서 한 텀을 더 학원에 등록했다. 그 때까지 해왔던 게 아쉽지 않도록 2년을 채우자고 설득했었다. 그 마지막 텀에, 그전에 와이프가 자원봉사를 했던 disabled adult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뽑힌 건 다른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한참 후에 다시 걸려온 그 시설의 전화. 이번에는 진짜였고, 그렇게 워크비자를 땄고, 나를 뉴질랜드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영주권을 위해서는 영어점수가 필요했고 딱 1번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피말리는 공부속에 결국 성공했다. 10년 넘는 간호사 경력, 그 바쁜 생활속에서 따두었던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더불어 자원봉사 경험, 간호사 등록을 위해 공부했던 영어실력이 어울어졌기엔 잡을 수 있던 기회라고 생각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 많은 좌절과 실패,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긴 6시간 넘는 테스트와 인터뷰들을 자신감있게 해내지 못했을 거 같다. 첫 전화 인터뷰에서 느꼈던 무서움, 첫 Paper coding에서 느꼈던 무너진 자존감, 첫 대면 인터뷰에서 느낀 부족한 영어 능력 등이 다시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그 기회를 가져다 준 거 같다. 물론 운 99%, 내 실력 1%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99%의 운도, 내 1%의 실력이 없었다면 아마 무의미했을 것 같다. 다시 되돌아봐도, 만약, 황가레이건이나 지금 다니는 직장의 인터뷰가 첫번째, 혹은 두번째 인터뷰였다면 나는 거기서 모두 실패했으리라 확신한다. 백번이 넘는 입사 지원, 수 십번의 전화 인터뷰, 십여번의 리크루팅 에이젼시 인터뷰, 열 번 가까운 온라인/Paper Coding 등의 테스트, 열 몇번의 기업과의 대면 인터뷰를 거치면서 변화된, 준비된 상태였기에,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확실해 보이는 것만, 될 거 같은 것만 했다면, 덜 좌절하고 덜 실패했을 수 있을 수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동안 사용했었던 조그마한 수첩과 블로그에 짬짬이 적어두었던 기록들을 보며 기억을 뒤새기며 이 취업기를 써내려왔다. 장황하게 내가 거쳐온 과정을 늘어놨으니 실제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 또한 내놔야 할 거 같은 부채감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내용들을 적어봐야 겠다. CV와 Cover letter, 전화 인터뷰 대처 방법, 내가 치뤘던 각종 테스트들, 뉴질랜드 이민을 위해 IT종사자가 선택 가능한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20개월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내가 경험한 선에서 기술해보려고 한다.

Nov 032014
 

한나에게

148일째 2014년 10월 27일, Labour day라 휴일이었어. 한나의 NZ 여권을 신청하려고 아침에 옆집 Bill한테 갔어. 유효한 NZ여권이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해야 하는데, Bill 할아버지의 여권은 만료되어 있었어. 그래서 다른 이웃집으로 아빠를 데려다주셨는데 다행히 2번째 집(20번지)에 William이 여권이 있더라구. 엄마 아빠가 이사오고 나서 이웃들에게 편지를 모두 보냈는데 답장을 보내준 집이였지. 다행히 여권이 있어서 증인용 폼을 채워주셨어. 근데 사진 뒤에 증인이 서명을 해야하는 걸 아빠가 몰라던 거야. 그래서 오후에 여권 사진을 인화한 다음에 다시 사인을 받았어. 한국 여권은 한국 들어가서 만드는 게 나을 거 같아. 지금 만들면 한나에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 않아서 임시여권밖엔 못 만들거든.

149일째 2014년 10월 28일, 엄마가 한나 데리고 우체국 가서 여권 신청 서류하고 엄마 아빠의 영주권 트랜스퍼 신청서류를 보냈어. 한나는 영주권자인 엄마 아빠 사이에 태어나서 태어나자 마자 NZ 시민권을 취득해서 영주권이 필요없어. 물론 한국 국적도 신청해서 취득한 상태야.

150일째 2014년 10월 29일, 엄마의 손목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아빠가 Sick leave를 몇 일 써야 할 거 같아. 오전 동안 열심히 일하고 2시쯤에 집에 오니 한나가 조금 놀란(?) 눈치였어. 최대한 엄마가 손목을 쓰지 않도록 아빠가 노력할 꺼야.

151일째 2014년 10월 30일, 날씨가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어. 강풍이 몰아쳐서 산책 나가기엔 좀 무리였거든.

152일째 2014년 10월 31일, 걱정했던 잠투정이 다시 잦아든 거 같아 참 다행이야.

153일째 2014년 11월 1일, 다시 시작된 강행군. 오전에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점심도 후딱 해결하고 한나가 12시쯤에 깨자 마자 한나를 태우고 보타니 쇼핑센터로 갔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쇼핑도 좀 하고, 커피도 마셨어. 그 전에 스타벅스에 갔을 때에는 한나가 캡슐안에서 자기만 했는데, 이제는 유모차에 누워서 엄마 아빠랑 장난도 치고 그랬어. 시간 참 빠르다. 중간에는 Parent room 가서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고 했어. 시간을 체크해보니 어느덧 4시. 후딱 집으로 와서 재우려고 했는데, 중간에 30분 정도 자서 그런지 도통 자려고 하지를 않는 거야. 결국 1시간이 넘게 놀다가 아기띠를 써서 겨우 재울 수 있었어. 근데 아기띠로 한나를 재울 때마다 아빠는 가슴이 두근거려. 아빠 품에 얼굴을 파묻고 쌔근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엽거든. 조그마한 사람이 잠을 자는 순간 마저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것, 그것을 받아내는 것. 그것이 부모되는 일이 아닐까 싶어.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고 10년 후 한나를 만난 것, 아빠의 선택 중 제일 잘한 선택 중 하나일꺼야.

154일째 2014년 11월 2일, 한나를 재우려고 하다 보니 잠투정이 장난 아니였어. 최근 들어서 한나를 눕히려고만 하면, 울고 보챘거든.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가 한나를 눕혀 놓고 바로 나가버린다는 것에 한나가 서러워 하는 거 같아. 최근 2달 정도 한나를 내려놓고만 나와도 혼자서 잠이 잘 들었거든. 아기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 때면, 다시 수면 패턴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글이 생각났어. 그래서 처음하는 것처럼 다시 해봤어. 한나를 내려놓고 엄마가 옆에서 한나 잠들때까지 계속 머리도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고 말이야. 엄마 말에 의하며 잠든 이후에도 4번이나 눈을 동그랗게 떠서는 엄마가 있는지 확인했다고 했어. 그동안 계속 사라져버리는 엄마 아빠 때문에 불안했을 한나에게 미안했어. 엄마는 한나가 잠들고서도, 엄마 손가락을 잡은 손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한 시간이 넘게 한나 옆에서 서 있었어. 앞으로는 한나가 잠들기전까진 꼭 엄마 아니면 아빠가 곁에 있을께.

아빠가

Oct 302014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다. 어느덧 뉴질랜드는 holiday 시즌을 맞이하고 있었다. 11월 말이 되어가자 신규 등록되는 구인공고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휴가철이니 새로운 구인건은 내년으로 미루는 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잡아서 와이프 휴가 기간 중에 와이프 친구 부부와 함께 북섬의 북부 지방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서 북쪽으로 갈수록 더 따뜻해지는데, 안 그래도 햇살 강한 여름인데 더 북쪽으로 가서 그런지 덥기까지 했다. Paihia와 Kerikeri, 90 mile beach(실제론 67mile 정도?)와 타즈만해와 태평양이 만나는 cape reinga 등을 여행했다. 백패커에서는 주인장이 잡아온 커다란 스냅퍼(도미류) 일부를 받아서 회로 먹는(아 초고추장이 없었다 ㅠ.ㅠ) 행운도 누리고, 90 마일 비치에서는 모래사구에서 샌드 슬라이딩도 즐기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비록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무언가가 가득했지만.

휴가 시즌이 끝나갈 무렵 다시금 Job hunting에 박차를 가했다. 올라오는 모든 구인공고에 지원서를 보냈다. Position도 가리지 않고, 지원분야도 좀 광범위하게 잡아서 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전화 한통.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약속을 잡고 집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넷 호스팅 업체의 구인건인데 내 경력이 잘 맞을 거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와의 인터뷰 준비를 철저히 했다. 회사의 구인 공고, 지원자 요건, 사업 내용, 내 경력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지, 어떤 걸 공헌할 것인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 스타일이 어떻게 해당 회사와 조화될 지, 어떻게 업무를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해서 준비했다. 인터뷰 당일,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회사의 한국인 스태프였다. 젊어 보이는 한국인 직원이었다. 팀장(?), 해당 업무를 하는 다른 직원, 한국인 직원과 나, 이렇게 4명이서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해나갔다. 해본 적 없는 것, 해본 적 없지만 공부해 본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얘기했고, 해본 일,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내 의견을, 서투른 영어로 피력했다. 인터뷰 결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의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원과 인터뷰를 계속 해나갔다. 웹 분야에도 지원을 많이했었는데, 그 중 한 웹 전문 에이전시와의 인터뷰가 잡혀서 오클랜드 시티로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조금은 복잡한 건물이라서 길치인 나에게는 고난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해당 에이젼시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거의 1인 기업 분위기였다. 게다가 감기가 걸린 상태라서 그런지, 인터뷰도 대충 대충하더니 감기 때문에 더 하기 힘들다면서 다음에 날 잡아서 계속 하자고 중단을 요청했다.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아무리 약자 입장의 구직자라지만, 그 인터뷰를 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에이젼시인지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물론 다음 인터뷰 날짜는 내가 확정해주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 하자고 하고 나왔다.

기대했던 웹 호스팅 업체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메일 대신에, 그 에이젼시가 전화를 해왔다. 다른 후보자가 있었는데, 아주 조금의 차이로 그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근소한 차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최종 후보자 2명 중 한 명이 되었었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경력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는 걸, 내가 해낸 그 장시간의 인터뷰가 너무 꽝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지만, 실패로부터 배워나간다면 조금씩 기회를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지방에 위치한 기업과의 인터뷰가 잡혔다. 이번에는 전화 인터뷰 후 직접 회사로 오라고 했다. 물론 교통비라든지에 대한 지원은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혼자 지방가는 버스를 타고 황가레이로 갔다. 도착 후 걸어서 회사 근처로 도착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점심 시간 끝나고 바로 인터뷰라서 근처 스시집에 들려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들려보니 조그마한 테이크아웃 전문 스시집이였다. 딱 봐도 한국인 직원이었다. 그래도 스시를 사려고 줄 서 있는 현지인들 때문에 그냥 영어로 간단히 결제하고 식당 앞에 놓여져있던 조그마한 탁자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가글도 하고 시간에 맞춰 회사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오래된 회사인듯 했다. 북섬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독점 기업인듯 했다. 개발 팀장과 직원, 에이젼시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참석한 면접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Problem solving 테스트였다. 개발 관련한 상황 3가지를 주고 어떻게 구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구성도라던지, 계획을 해보라는 것이였다. 익숙한 상황들이라서 늘상 해왔던 대로 슥삭 결과를 적어나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도 수긍하는 표정들이었다. 개발 팀장이 직원에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그 직원이 괜찮아 보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다. 그 이후에는 긴 인터뷰가 이어졌다. 내 경력, 업무 방법, 개인적인 성격에 대해서 하나 하나 물어보고 답하고 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100불 짜리 기프트 카드를 받았고 부푼 기대감을 가슴을 묻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어 교환 만남을 하는 친구가 다니는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딩 테스트를 보라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열심히 치뤘고, 그 이후에 인터뷰가 잡혔다. 회사에 가보니 규모가 꽤 되는 튼실한 회사였다. 사무실안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웹 개발자들은 해밀턴 지사에 주로 있어서 화상 회의와 함께 개발자 3명이 동석해서 면접을 봤다. 면접 내내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고 그런대로 잘 치룬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떨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합격하지 못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친구에게 얘기하니, 인터뷰에 참석한 사람 중 4명은 내 영어 보다도 떨어진다면 말도 안된다며 화를 냄으로써 나를 위로해주었다.

Oct 302014
 

한나에게

141일째 2014년 10월 20일, 일하다가 엄마에게 별 일 없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한나가 얼굴을 큰 상처를 또 냈다고 했어. 집에 와서 보니 정말 이제까지 만든 상처중에 제일 크더라구. 부랴부랴 손톱관리법을 찾아보니, 아기들 손톱에도 손톱줄을 사용해도 된다고 하더라구. 안되는 줄 알고 안했는데, 4개월 넘었으니 해봐도 괜찮을듯 싶었어. 계속 손가락을 빠니까 손톱이 약해져서 더 날카롭게 되거든. 손톱줄 해보니 훨씬 부드러워졌어. 그리고 로션도 발라서 다시는 얼굴을 상처 안나게 잘 관리해줄 게.

142일째 2014년 10월 21일, 아빠가 좀 늦게 퇴근을 했어.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한나가 깨더라구. 별루 오래 안 자고 얕은 잠 자다 깬 듯 싶었어. 부랴부랴 저녁을 챙겨먹고 목욕을 하고 배불리 수유를 하고 엄청 졸려하는 한나를 안고 재우기에 돌입했지. 그전에는 그냥 내려놓고 나왔는데 요즘 잠투정이 부쩍 늘어서 다시 수면교육을 하기로 했어. 그래서 한참을 안고 있다가 내려놓고 pacifier를 물려주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재웠어. 워낙 졸린 상태라서 그런지 한참을 낑낑 대다가 잘 잠들었어.

143일째 2014년 10월 22일, 엄마가 저녁에 나가서 사 온 테이블 스탠드랑 커턴을 시도해봤는데, 스탠드는 전구를 가려서 실패했고, 커튼은 잘 설치했는데, 한나 재우고 나와서 설명서를 보니, 냄새가 빠지도록 좀 환기시킨 후 사용하라고 해서, 겨우 조용 조용히 커튼을 다시 떼어야 했어. 결국 둘 다 실패!

144일째 2014년 10월 23일, 환기해뒀던 커튼을 다시 달았어. 빨간색 계열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이뻤어.

145일째 2014년 10월 24일,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아빠가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한나 목욕도 못 시키고 서둘러서 모임에 갔어. 가는 동안 한나는 잠이 들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잠이 깼어. 다들 한나 보고 싶어 했거든. 그런 후에 좀 있다가 다시 졸려하기에 재우고 나왔는데, 환경이 낯설어인지 안 졸렸는데 재우려 한건지는 몰라도 울면서 깼어. 엄마가 분유 수유를 하고 한참 걸려서야 겨우 재울 수 있었어. 그러고 거의 2시간 넘게 잤을 거야. 밤 11시 넘어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거의 12시가 다 되어 있었어. 서둘러서 다시 수유하고 재웠어.

146일째 2014년 10월 25일, 아빠가 하루 종일 놀러간 날이야. 회사 동료들하고 모임이 있어서 아침 일찍 청소하고 1시 넘어서 나가서 밤 11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어.

147일째 2014년 10월 26일, 아침에 집 근처 교회를 갔어. 예배 시간에 많이 늦었지. 근데 신기하게도 예배하는 내내 한나가 짜증도 안 내고 집중해서 지켜보더라구. 마지막에 음악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땐 우워 하며 옹알이도 하구. 예배 후에는 유모차를 타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보타니 타운 쇼핑센터에 갔어. 한나용 육아용품도 사다 보니 한나는 어느새 유모차에서 곤히 잠들었지. 마지막에 미니 전기오븐을 사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2시가 넘어있었어. 집에 서둘러 돌아와서 수유를 하고 얼른 재웠지. 거의 5시간 가까이만에 수유한거라 230ml 다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겨우 150ml 먹었어. 요즘 느낀건데, 한나가 마구 마구 먹지 않고 조절해가면서 먹고 있는 거 같아.

아빠가

Oct 262014
 

몸이 좀 나아지면서, Job hunting을 계속했다. 주로 Recruiting agency가 올린 구인광고들에 지원하다가, 업체가 직접 올린 구인 광고에도 지원해보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면 인터뷰 2건을 따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해당 회사 사이트의 내용을 열심히 요약하고 내 경력/스킬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할 것도 준비했다.

드디어 2번째 대면 인터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종이로 된 시험지를 받았다. 편안하게 추스렸던 마음이 엉망이 되었고, 준비했던 내용들도 연기처럼 다 사라져 버렸으며, 시험 또한 엉망으로 치뤘다. 시험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안간힘을 썼지만, 제일 중요해 보였던 마지막 질문에, 전혀 준비한 것과 다르게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고 나오고 말았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역시나 이틀 후, “Unfortunately…unsuccessful…”이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3번째 대면 인터뷰를 위해 다시 회사 정보 수집 및 대답할 꺼리를 준비했다. 아예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외워서 그럭저럭 잘 해낸듯 싶었지만 역시나 결과는 실패.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갔다.

영어 사용 시간을 늘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어 교환 사이트들을 탐색했다. 그 중 괜찮아 보이는 mylanguageexchange.com에 등록 후 한국어 사용을 원하는 50대 아저씨에게 연락을 시도해봤다. 몇일간 무응답이었다. 그런데 몇 일 뒤 IT분야에 근무하는 왠 남성이 메일로 접촉을 해왔다. 카카오톡을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디를 등록 후 이것저것 탐색을 해보니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주말에 시티에서 처음으로 언어교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는  kiwi(뉴질랜드 사람들은 본인들을 kiwi라고 부름)는 아니였고 Latvia 출신의 40대 SW 개발자였다. 오클랜드 시티에 위치한 모 IT업체에 근무중이었고, 취미삼아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1시간은 한국어 가르쳐주고 나머지 1시간은 영어로 대화 좀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 구한다는 얘기에, CV 한번 봐준다고 해서 메일로 보냈더니 Skill matrix를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일목요연하게 프로젝트, 사용한 기술 및 업무를 테이블로 만들어서 CV에 넣었다. 그리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도 구인중이라며 자기 추천으로 회사에 넣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헤드헌팅업체말고 직접 구인하는 업체에 주로 지원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오죽하면 seek.co.nz에서 리크루팅 에이젼시가 올린 구인공고만 삭제해서 보여주는 브라우저 플러그인(userscript)을 만들었을까 싶다.

리크루팅 에이젼시와의 전화 인터뷰나 대면 인터뷰를 하다보면 늘 듣게 되는 Local experience. 나 같은 새내기 이민자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자원봉사 경험이라도 쌓아두자는 생각에 여기 저기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사이트가 volunteernow.org.nz다. 거길 통해서 volunteeringauckland.org.nz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온라인으로 회원가입하고 신청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재촉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 다음 날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직접 직접 사무실로 방문해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뭐든 쉬운 게 없나보다 싶었다. 약속한 날짜에 사무실로 방문하니 백발의 할머니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셨다. 그분 중 한 분과 상담을 해서 구세군쪽에서 진행하는 elder people에 대한 be-friending 파트에 지원했다. 일부러 IT업계와 상관없는 일에 지원했다. IT보다는 언어를 늘리는 게 순서일듯 해서였다. 신청 후 2주가 넘은 시점에 구세군측에서 전화가 왔다. 주소가 잘못 된 거 같아서 확인 전화를 해온 것이다. 주소를 정정해주고 나니 몇일 안에 겨우 신청서류를 보내줬다. 뭐 쉬운 게 어디 있으랴마는 뉴질랜드에서는 뭐든지 인내심과 시간을 요구하는 거 같다.

지역 가리지 않고 지원하다보니, 어쩌다 남섬에 위치한 조그마한 업체와 skype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아침 10시에 상의만 셔츠를 걸치고 땀 뻘뻘 흘려가며 인터뷰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인터뷰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참 어이없었을 것이다.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었으니까. 몇 일 후에는 크라이스트처치(남섬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는 어느 업체의 개발 이사가 오클랜드로 구직자를 만나러 올라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클랜드 시티 도서관 내의 커피숍에서 2시간 넘게 면접을 치뤘다. 엄청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같기에 사실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늘 그랬듯 실패였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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