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개발자의 뉴질랜드 IT 취업기-2

뉴질랜드 도착 직후, 뉴질랜드 스타일의 CV랑 커버레터를 만들고, 영어 공부하고, seek.co.nz하고 trademe.co.nz에서 지원해야 할 구인공고 점검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 교민이 많이 가는 모 사이트의 구인 게시판에 올라온 모 교민 업체의 구인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진 경력과 보유한 스킬이 구인 공고와 얼추 맞아 떨어져서 CV를 보냈는데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결과는 실패. 첫 실패로는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첫 직장 퇴사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대답을 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아마 그것보다는,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첫 실패가 기폭제가 되어 입사지원을 폭발적으로 진행했다. Senior/Intermediate/Junior에 개의치 않고 무한 apply 러쉬를 실시했다. 18군데 지원 이후에 운 좋게 걸려온 첫 전화 인터뷰. 정말 가슴이 콩닥 콩닥 떨렸다. 전화기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며, 첫 전화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깨달았다. 난 한번도 영어로 전화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름, 비자 종류, 원하는 연봉 수준, 정규직/계약직 등을 간단하게 묻는 질문들도 이해 못하고 버버벅 거리자, 황급하게 bye를 날리며 끊는 구인 에이젼시의 음성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이후의 4번의 전화 인터뷰들도 몽땅 작살났다.

좌절의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와이프 아침을 챙겨주고, 아침 운동 조금 하고, 영어 공부하다가 좀 졸고, 점심 먹고 구인공고 목록 정리해서 지원하고, 이런 흐름의 일상 생활 속에서 누적되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날아든 희소식. IELTS 6.5 점수도 없이 영주권을 신청했다가 영어 시험 본 후 점수 제출하라는 담당 이민관 덕분에 와이프는 폭풍 영어 공부를 했었고 시험 점수가 발표되던 날, 정말 기적처럼 6.5가 나왔다. 기쁜 소식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부담거리였다. 비자는 해결되었고 이제 취업만 하면 되는 거였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와이프 친구가 알려준 http://www.englishlanguage.org.nz 에서 진행하는 워크비자 이상 소유자 대상의 구직자 무료 영어 과정. 온라인으로 신청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역시 없었다. 직접 전화해서 미팅 약속 잡고 직접 사무실에서 만나서 돈 내고 등록했다. 가 보니 2/3가 한국 사람이었다. 이라크 출신 난민 이민자 4명, 중국 이민자 2명, 나머지 12명은 한국 출신이었다. 강의 내용이 구직자인 내 입장에서는 꽤나 유용했다. CV 쓰는 법, 전화 통화하는 법 등에 대해 실무적 관점에서 배울 수 있고 실습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의 성격, 자신의 장단점 등을 영어로 기술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다. 과정이 끝나기 전에는 해당 과정의 선생님에게 CV 교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교정받은 CV를 가지고 지원하면서 전화인터뷰 비율이 높아졌다. 18군데 지원시 5번의 전화 인터뷰를 받았다가 교정 이후에는 4군데 지원에 3번의 전화 인터뷰를 받았다. 확실히 native가 쓰는 글은 달랐다. 같은 표현도 다른 어휘를 가지고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이 가능한 것이었다.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험난한 테스트 과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해본 온라인 기술 테스트. IKM이라는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기술 시험을 치뤘다.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던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짜증이 좀 났고, 그래서인지 대충 풀었던 거 같다. 사실 약간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시험을 치룬 사람에게 결과도 안 보여주는 불친절한 기술 테스트였다. 아마 의뢰자에게만 결과가 보내지는 구조일듯 했다. 물론 결과 제출 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비슷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간단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운동 중에 줄 넘기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화분을 쭈그려 앉은 채로 밀다가 허리 근처에 찌릿 하는 느낌이 왔다. 그 이후 별 다른 느낌은 없었는데, 구직자 영어 강좌를 들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점점 해당 부위가 찌릿찌릿 하면 아파왔다. 강좌 내내 앉아있기도 불편했지만 꾹 참고 강의를 마치고, 다시 긴 거리를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너무 아팠다. 겨우 겨우 다시 버스를 타고, 겨우 겨우 한 걸음 내딛고 한번 쉬는 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퇴근한 와이프와 함께 근처 한의원(대부분 침술사인데 한의원이라는 상호를 사용함, 뉴질랜드내에서는 그런 제재가 없는 듯함, 한국 면허를 가진 한의사는 정말 찾기 힘듬)를 찾아가서 침 맞고 물리 치료도 받고, 집으로 와서 파스도 붙였다. 그래도 이틀이나 앓아 누워있었다. 참 별 일이 다 생기는 구나 싶었다.

근데 치료를 받기 전에 ACC(사고로 인한 상해에 대한 치료를 커버해주는 공적 의료 보험 같은 제도, 관광객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환상적인 제도임) 등록을 하고 침술원을 갔다면 무료였을 텐데 그걸 모르고 가서 2번 물리 치료 + 침 치료에 130불을 낸 게 너무 아까웠다. 아는 것이 힘이자 돈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침술원이 ACC 등록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ACC Provider로 등록된 곳은 ACC 등록을 바로 해줄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뉴질랜드에서는 GP(일반 가정의)를 보는 데도 돈을 내야 하는 곳이 많은데, White cross는 무료 ACC 등록을 해주는 곳이라는 것도 검색으로 찾아서 알아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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